성우 강희선 별세, '짱구 엄마' 목소리가 남긴 따뜻한 위로 | 가족/일상
우리에게는 ‘짱구 엄마(봉미선)’로, 또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이번 역은…” 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던 목소리로 친숙한 성우 강희선 님이 향년 66세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마음 한구석이 묵먹해지는 오늘입니다.
그녀는 단순한 목소리 연기자를 넘어, 우리 시대를 가장 멋지고 주체적으로 살다 간 ‘진짜 어른’이자 닮고 싶은 중년여성의 귀감이었습니다.
18세의 꿈에서 시작해, 시대의 목소리가 되기까지
1979년, 18세라는 젊은 나이에 성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고인은 외화 전성시대에 샤론 스톤, 줄리아 로버츠, 우마 서먼 등 당대 최고 여배우들의 목소리를 전담하며 당당하고 매력적인 여성의 아이콘을 목소리로 그려냈습니다.
이후 26년 동안 '짱구 엄마'로 살아가며 우리에게 친근한 이웃의 따뜻함을 전했고, 30년 가까이 서울과 부산의 지하철 안내 방송을 맡으며 수많은 시민의 지친 하루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기계음(TTS)이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의 온기가 담긴 목소리였습니다.
"다음 생에도 성우를 하다 죽어도 좋다"던 치열한 삶의 태도
강희선 님의 삶이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삶의 가장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품격'과 '열정' 때문일 것입니다.
2021년 대장암 진단과 간 전이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음에도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날에도 짱구 극장판 녹음 마이크 앞을 지켰고, 병실에서조차 지하철 안내 방송을 녹음할 만큼 자신의 일을 생명처럼 사랑했습니다.
"연기를 생명처럼 생각해요. 다음 생에도 성우를 하다 죽어도 좋습니다."
지난 2024년, 방송에서 담담하게 건넨 이 한마디는 어떻게 살아야 '멋진 인생'인지를 몸소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녀에게 일은 단순한 생계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고 사랑을 나누는 삶 그 자체였습니다.
목소리는 영원히 남아 우리를 위로하리라
고인은 생전에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더 행복하고 유쾌해지기를 바란다"는 유지를 남겼다고 합니다.
부고를 접하고 나니, 짱구에게 잔소리를 하면서도 언제나 가족을 따뜻하게 안아주던 짱구 엄마의 모습이, 그리고 병상에서도 시민들을 위해 목소리를 다듬던 그녀의 치열함이 겹쳐 보여 가슴이 아려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당당하고 멋진 여성으로, 치열한 예술가로 살다 간 성우 강희선 님. 비록 고인은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따뜻한 온기와 목소리는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이제 아픔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